[언론보도] 내일신문 _ [기고] 텔레그램 못잡는 'n번방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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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1-12-17본문
[기고] 텔레그램 못잡는 'n번방방지법'
2021-12-16 11:50:12 게재
이충윤 법무법인 해율 변호사, 전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
10일부터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n번방방지법)에 대해 말들이 많다. n번방방지법은 아동 성범죄 촬영물을 통한 성착취물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법이다.
아동·성범죄와 관련해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을 방지하겠다는 입법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이를 구현하는 수단이 인터넷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고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또 다른 '인터넷규제입법' 양태가 돼 우려가 무성한 것이다.
국내 플랫폼 기업만 잡는 이상한 법
구체적으로 n번방방지법에서는 부가통신사업자 등에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른 촬영물 등에 대해 삭제·접속차단 등 유통방지 조치의무 및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과했다.
대한민국 헌법을 보자. 제18조는 국민의 통신의 비밀을 보장한다. 제21조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사전 검열을 정면으로 금지하고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검열은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①실질적으로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②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해 사전에 억제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④그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을 구비해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현재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부과된 유통방지 및 기술적·관리적 조치의무는 검열의 정의에 포섭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사전검열과 유사한 형태로 '고양이 동영상'도 업로드가 중지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적 검열이 아닌 관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n번방 사건이 있었던 텔레그램은 빼놓고 사실상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플랫폼 기업에게만 의무를 부과해 논란이 되고 있다. 본사와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고 정부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 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인터넷 사업자는 통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 조주빈 등이 기존의 국내 소셜미디어를 피해서 텔레그램에 '숨어서' 범죄를 저지른 것을 생각해볼 때, n번방방지법의 실효성이 부족하다 못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통위는 일반에 공개된 정보만을 대상으로 신고나 삭제 요청이 있을 때에만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이미 기존의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용자들의 신고나 삭제 요청이 있는 경우 지나칠 정도로 신속하게 삭제해왔다.
정부가 자유 맹목적으로 규제해선 안돼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교도소의 한 형태로 파놉티콘(Panopticon)을 제안했다. 이는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보다'는 뜻의 opticon이 합쳐진 단어로 '한눈에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벤담에 의하면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감시하는 간수를 의식해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18세기 영국에서 도입이 좌절된 파놉티콘이 21세기 한국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국부 벤저민 프랭클린은 '일시적인 안전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들은 자유와 안전 둘 다 가질 자격이 없다'고 연설했다. 자유에는 책임과 제한이 따른다. 그렇다고 정부가 자유를 맹목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한다면 권위주의정권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408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