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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중앙일보 _ 9년간 쓴 '가명' 책에 인용했는데...法 "그것도 개인정보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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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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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20.07.25 06:00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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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간 쓴 가명도 개인정보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A씨(36)는 ‘직업병 피해자’다. 2003년 2월, 19살일 때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 들어가 2년간 일했다. 그만둔 지 3년 만에 희소병인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점점 눈이 침침해졌고 몸의 감각이 둔해졌다.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2011년 7월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공단은 일하다 생긴 병이 아니라며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요양 불승인처분 무효 소송을 냈고, 긴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시민사회단체 및 언론들과의 인터뷰 요청도 들어왔다. 혹시나 모를 사회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이소정’이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다. 직업병 피해자로서 A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2017년 5월, 서울고등법원은 요양 불승인처분 무효 소송 2심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사례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고, 근로복지공단이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6년 만의 승소였다. A씨는 ‘이소정’이라는 이름을 버리려 했다.
 
2019년 3월, 그는 ‘다발성경화증에 걸렸던 이소정씨’라는 문장을 한 책에서 발견했다. 소송 과정에서 다발성경화증의 직업적 요인이 크다는 소견서를 써 준 B교수의 저서였다. A씨의 사례를 책에 넣겠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A씨는 기자에게 “삼성전자에 다니다 병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모르게 내 사례가 계속 인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밝혔다. 
 
A씨는 B교수와 출판사 측에 삭제·수정을 요청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같은 해 4월 A씨는 이들을 상대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과 3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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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B교수 측은 “‘이소정’은 A씨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명으로, 독자들은 이를 통해 A씨를 특정하기 어렵다”면서 “책에 나온 건 A씨 스스로가 언론과 SNS에 유포한 내용의 일부고, B교수는 자기 체험을 기록한 것뿐이다. 또 A씨의 사례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쓰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해율 백상현 변호사는 “판례에 따라 개인이 선택한 이명·별명·예명도 성명권에 의해 보호된다”면서 “A씨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노동자이자 그로 인해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피해자이지, 공적인 존재라 하기 어렵다. 또 B교수 측은 A씨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례를 인용했다”고 반박했다.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은 2019년 6월 1심에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이승련 부장판사)는 “A씨는 관련 소송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하면서도 자신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명을 사용해왔다. 가명을 인격의 상징이나 A씨를 식별하는 명칭으로 사용한 건 아니다”라면서 “책 표현이 A씨의 성명권(姓名權)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1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한 보도는 관련 소송이 진행될 때부터 적지 않은 언론기관에 의해 이뤄져 온 것으로 보이고, A씨 또한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례를 공론화해오기도 해 자신의 사례가 공표되는 것을 어느 정도 수인해야 할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B교수는 단순히 A씨의 사례를 노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송에서 소견서를 제출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려 했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A씨는 직후 항고했다. 지난해 10월 2심에서 양측은 법원 조정안을 받아들여 책에서 A씨의 사례를 수정하고 책을 내기로 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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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는 가처분 신청 1심과 반대되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001단독 최상열 판사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고 B교수에게 5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최 판사는 “9년 가까이 ‘이소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한 이상 가명도 원고를 식별하는 표지로서 성명권 보호의 대상이 된다”면서 “원고의 가명과 개인정보가 담긴 사례를 책에 적시하면서 원고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원고의 인격권·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성명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다만 최 판사는 “책에 기재된 원고에 관한 내용과 그 분량, 피고들이 책을 내게 된 경위와 판매 부수, 가처분 사건의 화해를 통해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한 개정판을 출판한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에게 배상해야 할 위자료액은 500만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B교수가 이에 곧바로 항소,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기자는 B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문자·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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